광주광역시는 <도은선생집>과 운암서원 소장 <해광집목판>을 시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광주광역시 문화재위원회는 관계학자·전문가 조사, 30일 이상 문화재 지정예고 등의 결과를 검토해 도은선생집을 제30호, 광주 운암서원 해광집목판을 제31호 시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도은선생
본관은 달성이며 호는 노재이다. 조선 1559(명종14년)년 동곡 수성동에서 태어났다. 율곡 이이의 문하생으로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승문원 정자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덕령 장군과 함께 의거하여 영호남 각지에서 격전을 벌였으며 1593년 광주지역에서 복수장 고종후와 함께 다시 의병을 모집하여 진주성에
이지호(李贄鎬, 1836~1892)는 광주 이씨, 자는 동현(東賢), 호는 지남(芝南)으로 광산(光山)에서 태어났다. 청심당(淸心堂) 이조원(李調元)의 후손이다. 아들 이승우(李承愚, 1855~1919)는 화순 출신으로, 일신재(日新齋) 정의림(鄭義林)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서양 오랑캐에 대응하여 자주적인 사상
북구 일곡로 41번길 41-8 옛 일곡동 자연부락 주택가 안에 일신재가 자리하고 있다. 일신재는 일곡동 절효사節孝祠와 함께 있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북쪽 20리 거리에 있다. 원래 있던 사우가 철폐된 이후 탕 임금의 반명盤銘을 따라 그 이름을 일신이라 했다. 은나라 탕임금은 세수 대야에 날마다 새롭게 한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산 1023(북구 송강로13)김덕령(金德齡) 박광옥(朴光玉) 오두인(吳斗寅) 김덕홍(金德弘) 김덕보(金德普)를 배향한 사우1604년(선조 37) 창건1604년(선조 37) 창건 당시 명칭 「벽진서원(碧津書院)」, 박광옥(朴光玉)을 제향1678년(숙종 4) 지방사람들의 발의로 김덕령(金德齡) 추향, 명칭 「의열사(義
광주광역시 남구 양과동 715-1(남구 지산재길51)지산재(芝山齋)는 광주광역시 남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이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신주를 모신 지산사(芝山祠)의 강당이다. 1979년 8월 3일 광주광역시의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었다. 경내에는 강당인 지산재와 내외삼문ㆍ영당이 있는데, 그 중 지산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235-(무등로 1040)운암서원(雲巖書院)은 원래 해광 선생이 자란 광주시 북구 운암동 자락 황계리에 세워졌으나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됐다가 1994년 지금의 광주시 북구 무등로(화암동)에 재건됐다. 사당에는 해광 선생과 사위 석주 권필, 아들 타의 영정과 신위가 있다. 서원
광주광역시 북구 생용동 314범세동(范世東) 범가용(范可容) 범천배(范天培) 범기생(范起生) 범기봉(范起鳳)을 배향했던 사우생룡동 314번지에 마을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복룡사유허비(伏龍祠遺墟碑)는 고려말 72현의 한 사람 문춘공 복애 범세동(范世東)을 주축으로
학봉(鶴峰) 범가용(范可容), 용계(龍溪) 범천배(
경열사景烈祠는 광주 무등산 자락과 나주, 두 곳에 있다. 두 곳의 경열사 모두 고려장군으로 우리나라 수군을 창설한 정지 장군을 모시고 있다. 대체 왜 정지 장군을 모신 사당이 두군데나 있는 것일까? 정지 장군의 고향은 나주였지만 정지 장군이 머물며 왜구창궐에 나섰고, 일생을 마감한 곳은 광주였다. 이에 충청도 사